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승호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기묘한 사건 조사 == 민씨 척족의 수장과 왕비의 어머니가 숨지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하자 조정은 물론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는 고종의 태도는 상당히 미적지근했다. [[고종실록]]에서도 이 엄청난 테러 사건을 범상한 사건처럼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의혹을 안겨주었다. 세간의 이목은 [[흥선대원군|대원군]]에게로 쏠렸다. 민승호가 죽어가면서 말도 못한 채 운현궁 쪽을 가리켰다는 건 사건의 배후로 대원군을 지목한 셈이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도 없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그해 봄, 민승호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민승호가 암살되고 나서 얼마 후에 [[흥인군]][* 흥선대원군의 셋째형]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민승호와 흥인군은 모두 대원군과 가까웠던 사이였으나 대원군의 실각 과정에서 고종의 편에 섰고 대원군은 이들이 자신을 배신했다 여겨서 이런 사건들을 일으켜 죽이려 한게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고종은 대원군을 수사하거나 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흥인군의 집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한 장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대원군과 가까운 신철균이라는 사람의 문객이었다. 같은 해인 [[1875년]], 다시 흥인군의 집에서 화재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고종은 다시금 사건의 범인으로 장씨를 체포했으며 그 배후로 신철균도 잡아들였다. 장씨는 민승호 암살과 흥인군 집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처형되었지만 신철균은 조정의 고위직을 지냈던데다 뚜렷한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방면되었다. 그러나 신철균은 이후 [[1876년]], 화적떼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신철균의 장모가 "내가 점을 쳐보니 모월 모일에 흥인군 집에 불이 날 것이다"라고 말했고 진짜로 장모가 말한 그 날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결국 신철균은 민승호 테러와 흥인군의 집에 두번 방화를 했다는 혐의로 [[능지처참]]에 처해졌으며 삼족이 멸족당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